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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나라 | 2009/05/17 06:20

박정희 대통령이 오늘날 문경새재를 있게한 인물

문경새재가 나라 안 제일가는 옛길 된 이유는
<칼럼>국내 최고의 고개인 ‘하늘재’ 흙길로 되살려야

 

 

 

◇ 지난달 28일 문경새재도립공원 안에 문을 연 ´옛길박물관´. 이 곳에는 서기 156년에 개척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로 꼽히는 하늘재, 옛길의 백미인 토끼비리 등 문경지역에 있는 옛길과 조선의 10대 도로, 고지도, 여행기 소개·전시되고 있다. ⓒ 서태영
문경은 길문화의 메카로 통한다. 문경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된 고갯길의 대명사인 문경새재와 가장 높은 고갯길인 하늘재, 그리고 한국의 차마고도에 비견되는 토끼비리, 영남대로 상의 허브 역할 담당했던 유곡역이 있어 길문화의 보고라 할만하다.

문경새재로 가는 길에 가장 먼저 만나는 문화공간은 문경새재 박물관을 리모델링해 새로 개장한 옛길박물관이다.

문경전통찻사발축제를 며칠 앞두고 개관한 옛길박물관(www.oldroad.go.kr)의 ‘길 위의 역사, 고개의 문화’ 전시회가 인기 폭발이다. 개관 일주일을 갓 넘긴 근래에 만들어진 박물관 가운데 가장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 문경석탄박물관을 뛰어넘을 태세다.

황금연휴를 맞이한 5월 가정 주간에는 관람객 수가 7~8천명에 이르렀다. 4명의 직원으로는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행락객들이 박물관으로 쇄도해 전시관이 미어터질 지경이다. 높아진 국민의 문화욕구에 적극 부응하는 눈높이 전략이 주효한 셈이다.

옛길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유수한 인물 가운데 실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역사인물이 딱 한 사람 있다. 국내 유일의 길 전문 옛길박물관의 안태현 학예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안동대학에서 민속학 석사를 받고 고려대에서 문화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길문화 박사다.

문경새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 된 그에게 “문경새재 길이 왜 이렇게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으로 각광받게 되었냐”고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지도자의 안목을 지적해냈다.

“길이란 것은 옛길이 넓어지고 곧게 신작로를 만들고 그 길이 2차선 포장로가 되고 굴곡이 심한 동선을 직선화시켜 4차선 되는 게 대부분인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오늘날 문경새재가 있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라고 비화를 소개했다. 문경새재는 어쨌든 초등학교 교사 시절을 잊지 않고 문경을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새재를 포장해달라는 지인들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고 비포장도로로 보존하도록 지시해서 팔자가 바뀐 길이라 했다.

개발의 화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개발보다는 보존하는 게 좋겠다는 견해를 내놓고, 국민관광지 경북 제1호가 되게 하고 이어서 도립공원으로 지정하게 하여, 문경새재는 자연보호법과 문화재보호법을 적용받는 곳으로 묶였다.

“이 고갯길은 절대 포장하지 마시오.”(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6년 국무회의에서)

그렇게 해서 문경새재는 ‘나라 안에 제일가는 옛길’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문경새재 ´옛길 박물관´ 안태현 학예사. 길문화 박사인 안 학예사는 다완으로 통용되던 것을 국립국어원의 감수를 받아 찻사발로 통일시켜낸 장본인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문경은 영남학파+기호학파의 문화권과 가까운 중원문화권의 특장들이 통섭하는 곳으로 고갯길 곳곳에는 도계경계의 특징들과 문화적 다양성이 나타난다고 했다.

황방촌 유물을 갖고 있는 노론계열 황희 정승의 후손들이 문경에 세거하게 된 데에는 자체적인 양반문화는 약했으나 외부에서 학파(당파)가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더라도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문경의 다문화가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조선의 묵객들에겐 쉬어가기 좋은 명승지이자 종교탄압을 피해 은신처를 찾던 동학과 천주교인들에겐 숨어살기 좋은 곳이 문경이었다.

호구지책으로 옹기를 만들고 한지를 만든 것이 오늘날 우리가 추켜세우는 전통문화 보존의 길이었으니 뒤틀린 역사의 길도 사필귀정(事必歸正), 언젠가는 바른 길로 돌아가는 것일까?

올해 11년째 접어든 찻사발축제로 탄광도시였던 문경은 이제 찻사발의 본향이라는 문화도시 이미지를 굳혔다. 찻사발축제도 알고 보면 바로 그 길문화의 요람인 문경새재 박물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대한민국 우수축제로 경북의 양대축제로 자리매김한 ‘문경전통찻사발축제’의 정수인 찻사발 이름을 붙여준 우리말지킴이이기도 하다. 그는 다완이라는 말로 통용되던 찻사발을 국립국어원의 감수를 받아 찻사발로 통일시켜낸 장본인이다.

그의 이러한 글장이 자질은 집안 내력과도 관련이 깊은 모양이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등단한 시인 안도현이 큰형이라고 수줍게 시인했다. (원광대를 졸업하고 전주 우석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안도현 시인은 안동이 고향이다.)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슬로건 공모에서는 “미래를 담는 그릇, 한국 박물관 100주년!”을 써내 1등상을 탔다.

문경새재 학예사로 근무하면서 그가 일궈낸 일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옥소 권섭 선생 기념사업을 들 수 있다.

◇ 길을 주제로 새롭게 단장된 ´옛길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 옛길박물관은 앞으로 문화콘텐츠를 집적하는아카이브 역할은 물론 옛길체험, 특별기획전, 교육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 서태영

그는 우리가 잘 몰랐던 무명의 권섭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조선의 유홍준이나 한비야(신정일)라고 비유했지만 지금이 조선시대라면 유홍준이나 한비야가 대한의 권섭으로 비유될 것이라며 옥소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범국민 문화관광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옥소는 조선의 기행인물로 나날이 빛나리라.

그렇지만 찻사발의 고장 문경을 고증하기 위해 130곳 정도의 도요지를 발굴한 것은 그의 최고 공적으로 꼽힌다. 그는 문경 도자기의 핵심을 중단 없이 잇고 쌓아온 원천기술에 있다며 3천만원으로 시작한 찻사발축제가 10억 행사로 외형이 30배 넘게 성장한 사실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문경찻사발축제의 정직한 관객이었던 자신은 “일본에서 문경행 전세기를 띄워야 축제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문경찻사발축제가 경상북도의 축제와 네트워킹하는 문화산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행락객 축제를 넘어서는 문화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것.

길문화 선구자인 그는 당분간 휴식을 취한 뒤, 옛길박물관은 앞으로 옛길과 관련한 문화콘텐츠를 집적하는 아카이브 역할은 물론 옛길체험, 특별기획전, 교육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2년 동안 고군분투했는데 막상 개관하고 난 뒤에 느끼는 만족도는 40~50%에 못 미칩니다. 그렇지만 관람객 중심의 박물관을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아울러 한국 최고의 고개인 하늘재 문경구간이 포장이 되어 있어 언젠가는 흙길로 되살려야 한다는 바람을 잊지 않았다. 현재 추진 중인 영남대로 복원에도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현재성이 가미되어야 역사가 된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시인 안도현은 “밤에, 전라선을 타보지 않은 사람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인생)고 했는데, 그는 “보름밤에 문경새재를 걸어보지 않은 사람하고는 기행을, 풍류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 문경새재와 더불어 살고 있는 그가 추천하는 문경새재 최고의 기행이니 그대로 옮겨 놓는다.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 보름에 5시경 출발해 조곡관이나 조령관까지 갔다 돌아올 때쯤 되면 보름달이 뜨는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길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달빛 쏟아지는 마사토 길은 환상 그 자체입니다.”

선현들의 자취가 서린 문경새재 옛길에서 그는 역사에 길이길이 빛날 길문화를 창달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로로 2008년 박물관·미술관 발전에 힘쓴 유공자에 뽑혀 문화체육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안태현 학예사가 추천하는 전시회 관람법은 1,2층으로 구성된 옛길박물관 전시공간에서는 새로 임명받은 관리의 빠른 상경을 명령하는 내용이 적힌 왕명서인 유지(有旨), 벼슬아치들이 각 지방의 역에서 말과 침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문서인 노문(路文), 예전 과거길, 요양길, 상소길, 암행어사길 등 길을 지날 때 지녔던 물건과 사연, 선비의 과거길을 연상케 하는 괴나리봇짐과 봇짐 속의 좁쌀책, 호패, 휴대용 고지도가 전시되어 있다.

또 조선의 10대 도로, 옛 지도의 제작, 운송도구, ‘조선도리도표’, ‘택리지’ 등 길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의 기행인물로 벼슬을 마다하고 조선 팔도를 유람하며 구백리 머나먼 여행길을 개척한 옥소 권섭을 만날 수 있다. 옥소는 팔도를 유람하며 조선의 명승을 둘러보고 느낀 감흥을 문학의 형태로 남긴 풍류인이었다.

이 가운데 안태현 학예사가 권유하는 관람 제 1경은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인 ‘평산 신씨 묘 출토복식’(제245호)과 ‘최진 일가 묘 출토복식’(제249호)이다.

권섭 선생과 관련해서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을 정도로 애착이 가지만 ‘옥소 권섭 영정’(문화재자료 제349호)은 크게 알려져 신선도가 좀 떨어져 버렸다고. 그는 2달만 한정 전시하는 출토복식에 관심을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글/서태영 대구민예총 역사문화연구소장

by 초록나라 | 2009/05/16 12:28 | 민족중흥 박정희 | 트랙백 | 덧글(1)

나의 조국 (박정희 대통령 작사 작곡)

> >나의 조국....박정희 작사 작곡
1.백두산의 푸른정기 이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에 높은기상 이겨레 지켜왔네
무궁화꽃 피고져도 유구한 우리역사
굳세게도 살아왔네 슬기로운 우리겨레
2.영롱한 아침해가 동해에 떠오르면
우람할 손 금수강산 여기는 나의 조국
조상들의 피땀어린 빛나는 문화유산
우리모두 정성다해 길이길이 보전하세
3.삼국통일 이룩한 화랑의 옛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새마을 정신으로
영광된 새 조국에 새역사 창조하여
영원토록 후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세
♬ 해설
조국 근대화를 이루고자 했던
박정희대통령의 원대한 비젼이 표현된 노래이다.
'건설', '영롱', '새 역사', '창조', '영광'...
온통 희망적인 용어들로 가득하다.
박정희대통령이 우리 민족사에 가장 긍정적으로 기여한 점
중의 하나를 꼽는다면....
우리도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 아닐까 한다.
이 노래 가사에는 그런 도도한 자신감과 굳센 의지가 담겨 있다.
이러한 내용에 걸맞게 군가풍의 곡을 붙였다.

by 초록나라 | 2005/11/12 17:08 | 조국근대화 박정희 | 트랙백 | 덧글(0)

새마을 운동의 정신( 박정희 대통령 작사 작곡 - 새마을 노래)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의 정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혔다.

「협동하면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게 되고 이 자신감은 새마을운동의 원동력이 된다. 새마을 운동은 조국근대화의 행동철학이며 그 정신은 근면 자조 협동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잘살기운동인 새마을운동은 내일과 후손들을 위해 잘사는 내 고장, 번영된 우리 조국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큰 뜻이 있는 것이다. 확실히 지금 우리 농촌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운동은 우리 역사상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새바람이요 서광이요 희망인 것이다. 우리는 이 운동을 통해서 확실히 우리 민족도 잠재적으로 무한한 저력을 가진 민족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한민족이 침체에서 벗어나 일대비약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의 정신은 박대통령이 작사한 새마을노래 가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서로서로 도와서(협동), 땀흘려서 일하고(근면),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살기좋은 내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자조)」라고 하였으니, 이 노래 속에 담긴 의지는 바로 근면과 자조와 협동의 정신으로 잘사는 마을, 잘사는 국가건설, 그리하여 씩씩하고 희망찬 새로운 조국을 건설하자고 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








by 초록나라 | 2005/11/12 17:08 | 민족중흥 박정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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